[최진숙의 문화모퉁이(32)]기계가 다정함을 연기할 때
가상 존재 의존, 사회적 문제로 대두
AI기업 청소년 보호 책임 강화 필요
윤리적 기준 바탕 법·제도 마련 시급
작년 12월 미국의 대표적인 시사 프로그램 <60 Minutes>이 다룬 한 13세 소녀의 비극적인 자살 사건은 인공지능(AI)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서늘한 공포와 경종을 울린다. 그 나이 때 사춘기 소녀로서 흔히 겪는 외로움과 혼란을 극복하고자, 그녀는 가상 캐릭터 챗봇 플랫폼인 ‘character.ai’의 캐릭터와 수개월 동안 밤낮으로 은밀히 교감을 나누었다.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완벽하게 모방하여 ‘다정함’을 연기할 때, 아직 자아가 성숙하지 못한 소녀는 이를 실제 인격으로 치환해 버렸다. 현실의 관계를 단절한 채 캐릭터 AI를 유일한 친구로 믿었던 소녀는 결국 우울증을 극복할 기회도 갖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 사건 외에도 유사한 사건에 희생된 자녀의 부모들은 이 회사를 대상으로 소송 중이다. 방송에 출연한 한 부모는 울부짖는다. “내 딸을 데려간 것은 딸의 영혼을 사로잡은 기계였다”고. 기술이 인간의 가장 취약한 감정인 외로움을 고도의 알고리즘으로 포획하여 활용했을 때 발생하는 참혹한 결과이다. 이 비극의 중심에 선 챗봇 기업의 윤리적 태도는 치명적인 결함을 드러낸다. 그들의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체류 시간을 극대화하고 기업의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청소년의 정신적 취약성을 이용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자살 징후를 감지하고 차단해야 할 윤리적 안전망은 사실상 전무했다. 비극적인 청소년 자살 사건이 발생하던 시기의 회사 대표였던 노암 샤지어 (Noam Shazeer)는 구글(Google)의 핵심 AI 연구원 출신이며, 구글에서 챗봇(LaMDA) 기술을 개발하다가 구글이 안전성 문제를 이유로 출시를 미루자, 퇴사하여 character.ai를 공동 창립한 엔지니어이다. 그런데 회사가 미성년자 안전성 문제와 소송으로 극심한 사회적 지탄을 받기 시작한 2024년 8월, 구글은 그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character.ai에 수십억 달러의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했다. 창립자이자 대표가 윤리적 책임의 한복판에서 수백억 원의 몸값을 챙겨 대기업으로 도망가 버린 셈이다. 사실 이러한 기술의 전횡과 인간 자아의 상실에 대한 경고는 AI가 출현하기 전에도 있었다. 많은 인문학자들은 근대화와 기술 문명이 태동한 이래로 인간의 소외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어 왔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피조물에 영혼을 빼앗기고 종속될 것이라는 공포는 이미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부터 예견되었고, 프랑스의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 역시 컴퓨터가 대중화되기도 전부터 현실의 원본보다 더 실제 같은 모조품이 판을 치는 현상을 ‘시뮬라크르(Simulacre)’라 명명하고, 현대 사회가 실재보다 가짜를 더 우위에 두는 초실재(Hyperreality)의 세계로 진입할 것이라 경고했다. 인간이 상처받기 쉬운 원본(현실의 인간)을 기피하는 대신, 자신에게 완벽하게 맞춰진 복제품(AI 챗봇)을 더 갈망하고 사랑하게 된 것을 예측한 셈이다. 자본이 만들어낸 AI 챗봇은 언제나 내 말에 동조하고, 24시간 나만을 기다리며, 내가 원하는 인격으로만 존재하는 타인이다. 인지인류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나만의 고유한 잠재력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강렬한 개인주의적 열망이 현실 구조 속에서 좌절될 때,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디지털 세계의 가상 인격과 잘못된 의존 관계를 맺는 것이다. 마땅히 현실의 사회적 연결 속에서 치유받고 나누어야 할 인간적 외로움이, 거대 테크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속에서 고도로 소비되고 있는 셈이다. AI의 윤리는 기업의 면피용 가이드라인이나 수익을 위한 도구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정신적 안전망을 사수하는 가장 단단한 법적·제도적 근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진정한 구원과 위로는 정교한 데이터의 조합이 아니라, 나와 같은 실존의 무게를 감당하며 숨 쉬는 또 다른 인간의 온기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AI에 환호하는 와중에, AI 기업이 인간의 존엄성과 정신적 안전망을 사수하는 윤리적 기준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더 나아가 가장 단단한 법적·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길 바란다. 최진숙 UNIST 인문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26년 5월 20일 경상일보 “[최진숙의 문화모퉁이(32)]기계가 다정함을 연기할 때”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